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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첫 내한공연 U2 “모두가 평등할 때까지 누구도 평등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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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은남리 작성일19-12-09 13:29 조회4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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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성 뒤 43년만에 고척돔 공연한 유투]
여성주의 담은 ‘허스토리’를 메인 메시지…
나혜석·서지현 검사·설리 등 얼굴 스크린에
음악 뿐 아니라 사회운동가적 면모 드러내

9일 문 대통령 환담 예정…김정숙 여사도 찾아
역대급 무대 장치에 24곡 꽉 채운 공연 선봬
한국어로 “감사합니다” 인사에 팬들 떼창 화답
마지막 곡 ‘원’으로 평화의 메세지도 전해
라이브네이션코리아 제공

“우리 모두가 평등해질 때까지는 우리 중 누구도 평등하지 않다.”

아일랜드 출신의 세계적인 밴드 유투(U2)가 결성 43년 만에 한국을 찾아 던진 메시지는 강력했다. 이번 공연의 주요 메시지는 여성주의 시각을 담은 ‘허스토리’(HERSTORY)였다. 유투는 'Ultraviolet (Light My Way)'를 열창하며 세계를 움직인 여성들과 나혜석, 서지현 검사, 김정숙 여사, 설리 등과 함께 위 슬로건을 한국어로 올려 감동을 더했다. 음악 활동뿐 아니라 사회적인 이슈와 현안에 앞장서 목소리를 내 노벨평화상 후보로도 거론됐던 사회운동가다운 면면이 도드라지는 모습이었다.

8일 저녁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막을 올린 유투의 첫 내한공연은 철학적이고 깊이 있는 가사와 완성도 높은 사운드, 압도적인 무대 연출로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유투의 보컬 보노가 9일 문재인 대통령을 접견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알려진 가운데, 부인 김정숙 여사도 이날 공연을 찾아 눈길을 끌었다. 유투는 1976년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보노(보컬·기타), 디 에지(기타·키보드), 애덤 클레이턴(베이스), 래리 멀린 주니어(드럼·퍼커션) 등 4명이 결성한 그룹으로, 원년 멤버들이 지금까지 함께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이번 내한은 1976년 결성 이후 43년 만에 성사된 것으로, 단 1회 공연으로 진행됐다. 특히 이번 공연은 유투를 세계 최정상급 스타 반열에 올린 5집 <더 조슈아 트리>의 발매 30주년을 기념해 진행된 ‘조슈아 트리 투어’의 연장 공연의 일환이다.

라이브네이션코리아 제공

공연 시작 전부터 공연장의 열기는 대단했다. 2만8천여 명의 관객이 스탠딩 구역과 객석을 꽉 채웠으며, 세대와 문화를 아우르는 밴드답게 관객층의 연령대와 국적도 다양했다.

유투는 조슈아 트리의 모습을 형상화한 돌출 무대에서 ‘Sunday Bloody Sunday’를 부르며 공연의 포문을 열었다. 이 노래는 1972년 1월 30일 북아일랜드 델리(Delly)에서 평화적 시위를 하던 아일랜드인들 28명이 영국군의 발포로 잔혹하게 희생당한 '피의 일요일'(Bloody Sunday) 사건을 이야기한 노래다.

연이어 ‘I Will Follow’와 ‘New Year's Day’ ‘Pride (In the Name of Love)’를 선사한 유투는 한국 팬들에게 첫인사를 건넸다. 유투는 "땡큐, 코리아!(Thank you, Korea)"를 외쳤고, 팬들은 환호로 화답했다. 보컬 보노는 멤버들에게 한국에 방문한 소감에 대해 물었고, 디 에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래리 멀렌 쥬니어와 아담 클래이톤은 "다시 돌아오겠다"고 말해 환호를 자아냈다.

이후 첫 그래미 수상 앨범인 <더 조슈아 트리>의 수록곡 전체를 불렀다. 'I Still Haven't Found What I'm Looking For'를 부를땐 관객석으로 마이크를 건네 후렴구를 함께 부르기도 했다. 이후 유투의 대표곡이자 한국 팬들에게 유명한 'With or Without You'를 열창하자, 관객들은 공연장이 떠나가도록 ’떼창’이 멈추지 않고 이어졌다. 이어 'Bullet the Blue Sky' 'Running to Stand Still' 'Red Hill Mining Town'와 'In God's Country' 'Trip Through Your Wires' 'One Tree Hill' 'Exit' 'Mothers of the Disappeared'를 라이브로 선사했다.

라이브네이션코리아 제공

유투는 <조슈아 트리> 앨범 트랙을 마무리하며 "엄청난 환영에 감사하다"며 소감을 전했다. 이어 앙코르를 앞두고 'Desire'를 부르자, 팬들은 노래에 맞춰 떼창을 펼치며 분위기를 달궜다. 이후 앙코르곡을 부른 유투의 보노는 또박또박 한국어로 “감사합니다”를 두 번 외치기도 했다.

마지막 곡은 역시 '원(one)'이었다. 이 노래는 베를린 장벽 붕괴에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곡으로 독일이 통일한 1990년 베를린 한자 스튜디오(Hansa Studios)에서 녹음됐다. 지난달 19일 문재인 대통령 국민과의 대화에서 '원'이 배경음악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한편, 이날 공연에선 역대급 규모 역시 관객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투어 역사상 최대 규모인 가로 61m, 세로 14m, 8K 해상도 LED 비디오 스크린은 공연장 배경을 가득 채웠다. 황금색 배경의 비디오 스크린에는 은색 조슈아 트리가 그려졌고, 비디오 스크린 위까지 뻗어 나온 조슈아 트리의 그림자처럼 메인 스테이지에서 관객석으로 이어지는 돌출 무대도 설치됐다. 이번 내한공연을 위해 화물 전세기 3대 분량, 50피트 카고 트럭 16대 분량의 글로벌 투어링 장비가 그대로 공수됐고 공연 무대 설치와 운영을 위해 150명 규모의 투어 팀이 함께 했다. 또 한국어로 자막을 띄우거나, 공연 마지막에 태극기를 스크린에 선보이기도 했다.

한국 팬들에겐 43년을 기다려온 공연인 만큼 유투 역시 최대한 많은 노래를 들려주려 애썼다. 24곡을 가득 채운 시간 동안 만큼은 공연장 안의 모두가 평등했다.

신지민 기자 godji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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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부터 2009년까지 10년마다 경향신문의 같은 날 보도를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매일 업데이트합니다.

■1999년 12월9일 국가가 강제한 ‘해로’


가부장적이고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 경제권을 틀어쥐고 최소한의 생활비만 주는 남편. 의처증으로 아내를 괴롭히는 남편과 이혼할 수 없다면?

20년 전 오늘은 한 70대 할머니 ㄱ씨의 이야기가 경향신문에 실렸습니다. ㄱ씨는 50년 넘게 가부장적인 남편에게 시달리다 “남은 인생 홀로 살고 싶다”며 이혼 소송을 냈는데요. 대법원은 할머니의 간절한 소망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할머니의 사연을 들어볼까요. ㄱ씨는 1946년 남편 ㄴ씨(84)와 중매로 결혼했습니다. 딸 셋에 아들 하나를 낳아 길렀지만 남편은 경제권을 틀어쥔 채 최소한의 생활비만 줬습니다. 돈을 꽤 벌었으면서도 말이죠. 뿐만 아니라 자기 뜻에 거슬리면 욕설과 주먹질도 했습니다. 나이가 들어서는 의처증이 생겨 ‘아내가 불륜을 저질렀다’고 의심하는가 하면 치매증세까지 보였습니다.

할머니는 오랜 세월 ‘나만 참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인내해왔다고 합니다. 그러다 견디다 못해 1997년 5000여만원을 들고 큰딸 집으로 피신하자 남편은 할머니를 절도 혐의로 고소하기까지 했습니다. 결국 ㄱ씨는 남편을 정신과로 데려가 ‘망상장애’라는 소견서를 받아낸 뒤 1997년 이혼소송을 냈습니다.

1심인 서울 가정법원은 ㄱ씨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재판부는 “남편의 폭행·폭언과 지나친 의심 등으로 결혼 생활이 유지되기 힘든 점이 인정되므로 남편은 아내에게 위자료 3000만원과 재산분할금 7억원을 주라”고 판결했습니다. 결혼생활이 어려우니 지금이라도 헤어지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1999년 12월9일자 경향신문 27면
하지만 2심인 서울고법에서 판결은 뒤집혔습니다. 고법은 남편의 의처증이 노령에 따른 증상이고, 부부가 고령인데다 두 사람이 결혼할 당시의 가치 기준으로 볼 때 남편이 심하게 부당한 대우를 한 것은 아니라며 이혼을 불허했습니다.

ㄱ씨는 즉각 상고했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2심과 같았습니다. 대법원 민사2부는 “부부의 연령과 혼인기간, 혼인 당시의 가치기준을 참작한 원심은 정당하다”며 “원심의 취지를 나이든 부부의 이혼을 허용하지 않거나 가부장적 남존여비 관념을 갖고 이혼을 제한하는 것으로 볼 수는 없다”고 밝혔습니다. 재판부는 또 “ㄱ씨는 고령으로 정신장애를 겪고 있는 남편을 돌볼 의무가 있다”고도 했습니다.

여성계는 반발했습니다. 여성단체들은 이 판결이 “국가가 법의 이름으로 여성의 행복추구권을 박탈한 것”이라며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이보다 약 열흘 앞선 그해 11월에도 비슷한 판결이 있있습니다. 대법원은 그해 11월26일 ‘80대 남편의 가부장적인 태도 때문에 함께 살 수 없다며 이혼 소송을 낸 76세 할머니에게 “해로하시라”며 소를 기각했습니다. 당시 “하루를 살아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할머니의 외침은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남았습니다.

사실 이 무렵 ‘황혼 이혼’은 한국 사회에서 뜨거운 감자였습니다. 황혼 이혼이라는 단어가 등장한 것도 1990년대 말입니다. 가부장제의 억압에서 벗어나 황혼이 되어서야 자유를 찾으려는 여성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공고한 가부장제 탓에 이마저도 쉽지 않았지요.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여성단체 회원들이 1999년 12월13일 서울 서초동에서 황혼이혼을 기각한 대법원 판결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강산이 두 번 바뀐 지금은 황혼 이혼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지난 6월 보건사회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50~60대 중년 10명 중 4명은 ‘상황에 따라 황혼 이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같은 인식 전환은 실제 이혼 통계로도 나타나는데요. 지난 3월 통계청의 혼인·이혼 통계 결과 분석자료에 따르면 2018년 만 60세 이상 이혼건수(남성 기준)는 1만6029건으로 전체 이혼 10만8684건의 14.7%를 차지했습니다.

법률적으로는 부부지만 실제로는 각자 생활하는 ‘졸혼’도 대안으로 급부상하고 있죠. 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서 응답자의 42.2%가 ‘졸혼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했다고 합니다.

최민지 기자 ming@kyunghyang.com


▶ 장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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