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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EC의 힘, 왜 약해졌나]
- OPEC의 의도, 시장에선 반대로
유가 하락 막기 위해 감산 결정… 시장선 안통하고 되레 더 떨어져
셰일혁명에 원유 생산 1위 된 美, OPEC견제 'NOPEC 법안' 추진
카타르도 사우디 간섭 피해 탈퇴… 사우디 아람코도 주주 이익 우선
- 이빨 빠진 호랑이 신세
결국 美·사우디·러시아가 세계 기름값 좌우할 전망


파리=손진석 특파원
지난 7월 1일 오스트리아 수도 빈에 24개 산유국 석유·에너지 장관이 모였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에 속한 14개 국가와 OPEC 회원국은 아니지만 원유를 생산하는 러시아·멕시코 등 비(非)OPEC 10개국이 모인 이른바 'OPEC 플러스' 회의다. 이 24개국은 내년 3월까지 원유 감산(減産)을 9개월 연장하기로 합의했다. 국제 유가가 낮아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하지만 시장은 OPEC의 의도와는 반대로 움직였다. 브렌트유 가격은 배럴당 67.52달러(6월 28일)에서 65.01달러(7월 1일), 62.72달러(7월 2일) 순으로 하락했다. 세계 원유 수급을 좌지우지하며 막강한 위세를 자랑하던 OPEC이 시장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걸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내년에 창설 60년째를 맞이하는 OPEC이 '종이호랑이' 신세로 전락해 우울한 '환갑'을 맞이할 전망이다. '셰일 혁명'에 성공하며 세계 최대 원유 생산국이 된 미국에 밀리면서 OPEC의 영향력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우울한 60세 생일 맞는 OPEC

OPEC은 1960년 사우디아라비아·이란·이라크·쿠웨이트·베네수엘라 등 5개국이 석유 수출로 얻는 이익을 공유하기 위해 출범시켰다. 이듬해 가입한 카타르까지 6개국을 창설 멤버로 분류한다. 이후 OPEC은 1970년대 세계 석유 생산 시장의 절반을 차지하며 위세를 자랑했다. 특히 1973년 사우디 주도로 OPEC이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에 공급을 줄이며 '오일 쇼크'를 불렀을 때가 전성기였다. 1972년 배럴당 2.5달러이던 국제 유가는 2년 후 11달러대까지 단기간에 4배 이상으로 치솟았다. 서구 열강들이 OPEC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던 시절이다.

하지만 이런 영화 같은 이야기는 옛말이 됐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세계 원유 생산량 중 OPEC 소속 14개국의 생산 비율은 올해 30%로 떨어졌다. 2012년만 하더라도 35%를 차지했지만 이후 계속 떨어져 20%대로 추락하기 직전이다. OPEC의 생산 비율이 20%대로 떨어진 것은 1980년대 중반 원유 가격 폭락을 방어하기 위해 대규모 감산을 하던 시기뿐이며, 1990년 이후 한 번도 없었다.

OPEC의 내리막은 속도가 붙고 있다. 최근 2년 사이 세계 원유 생산량은 2.7% 늘어났지만, OPEC 생산량은 8.4% 줄어들었다. OPEC 회원국이 감산해도 전체 원유 공급이 늘어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지난해 석유 생산량 상위 5개국 중에서 OPEC 회원국은 2위 사우디뿐이다. 1위 미국을 비롯해 3~5위인 러시아, 캐나다, 중국이 모두 OPEC 소속이 아니다.

◇미국 '셰일 혁명'에 맥 못 추는 OPEC


OPEC이 '이빨 빠진 사자'가 된 가장 큰 이유는 미국의 '셰일 혁명'으로 기세가 꺾인 탓이 크다. 미국은 암반층 깊숙한 곳에서 원유를 빨아올리는 채굴 기술을 개발해 셰일층에서 풍족하게 원유를 생산하고 있다. 덕분에 미국은 사우디를 제치고 세계 1위 원유 생산국이 됐다. 이른바 '사우디 아메리카(1위 산유국 사우디아라비아와 미국의 합성어)'의 시대가 된 것이다. 셰일 업체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2014년 무렵 위기를 느낀 OPEC은 원유 생산량을 급격히 늘려 가격을 낮췄다. 생산 단가가 높은 셰일 업체들을 고사시키기 위해서였다. 일부는 OPEC 의도대로 도산했지만 적지 않은 셰일 업체들이 기술 개발을 가속해 생산 원가를 낮추는 데 성공하면서 생존에 성공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제 더 이상 OPEC이 셰일 업계를 견제하기 어려워졌다"고 했다.

올 들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시리아에서 갑자기 미군을 철군시킨 것을 비롯해 미국이 과거와 달리 중동 정세에 덜 민감한 이유도 셰일 혁명으로 OPEC이 무력화됐기 때문이다. 중동 지역 상황과 무관하게 미국이 독자적으로 충분히 원유 수급을 할 수 있게 되면서 중동과 OPEC이 관심에서 밀려났다는 것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25년이면 미국이 세계 원유 생산량의 5분의 1을 차지하면서 최강자의 지위를 굳힐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런 가운데 OPEC은 내부 분열 양상도 보이고 있다. 지난해 창설 멤버인 카타르가 탈퇴하면서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 친(親)이란 노선을 걸으며 사우디와 외교 갈등을 벌인 카타르는 사우디의 간섭을 피해 아예 OPEC을 벗어났다. OPEC의 우산을 쓰고 얻는 실익이 줄어들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절치부심한 OPEC의 '맏형' 사우디는 미국을 견제하기 위해 러시아와 생산량을 협의하는 횟수를 늘리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에 손을 내미는 행위가 OPEC이 더 이상 필요 없다는 무용론을 공고히 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

◇아람코 상장도 OPEC에는 악재

원유 전문가들은 OPEC에서 회원국 추가 이탈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본다. 원유 생산량으로 세계 6위, OPEC 2위인 이라크가 OPEC을 뛰쳐나올 영순위로 꼽힌다. 마이클 코언 바클레이스은행 에너지 애널리스트는 "테러집단 IS(이슬람국가)와 내전을 마치고 국가 재건 사업 비용이 필요한 이라크는 OPEC의 감산 방침이 과도하다고 판단하면 반발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 의회에 이른바 '노펙(NOPEC) 법안'이 계류 중인 것도 OPEC에는 악재다. 노펙은 미국의 반독점법에 근거해 OPEC 회원국들이 협의를 통해 증산 또는 감산하는 것을 담합으로 처벌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이다. 노펙을 검토하는 이유 역시 셰일 오일로 자신감을 얻은 미국이 '중동의 석유 파워'를 눌러버리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사우디가 세계 최대 석유회사인 국영기업 아람코를 상장하는 것도 OPEC을 위축시키는 요인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아람코 주주들이 원하는 방향과 OPEC의 이해관계가 엇갈릴 때 아람코 경영진이 OPEC보다는 주주 편에서 의사 결정을 하게 될 확률이 높다고 에너지 전문 매체 오일프라이스닷컴은 보도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장기적으로 OPEC보다는 원유 생산 세계 3강인 미국, 사우디, 러시아가 '3자 합의'로 세계 원유 수급량을 조절하는 방향으로 갈 것으로 내다봤다.

[파리=손진석 특파원 aur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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