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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즙 곰팡이 사건’ 잊혀졌나…임블리 ‘블리마켓’ 하루 매출 1억원 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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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요민준 작성일19-10-29 18:52 조회6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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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건에프씨 제공
‘호박즙 곰팡이’ 논란으로 매출 직격탄을 맞았던 임블리와 블리블리가 ‘블리마켓’으로 하루 매출 1억을 올렸다.

28일 온라인몰 임블리 운영사인 부건에프엔씨는 임블리와 자사 화장품 브랜드 블리블리가 26~27일 서울 마포구 홍익대 근처에서 연 ‘블리마켓’ 행사가 하루 만에 매출액 1억2000만원을 올렸다고 밝혔다.

이는 임블리와 블리블리의 오프라인 역대 최고 매출이며, 이틀 간 방문객은 3300여명에 달했다고 부건은 설명했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부건에프씨 관계자는 “그동안 브랜드를 믿고 응원해준 고객들을 위해 감사의 뜻으로 마련한 자리”라며 “앞으로도 새로운 행사로 고객과 소통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한편 임블리는 지난 4월 초 호박즙에 이물질이 나왔다고 제보한 소비자에게 무책임한 대응으로 논란에 휩싸였다. 당시 임블리 측은 “환불은 어렵고 그동안 먹은 것에 대해선 확인이 안 되니 남은 수량과 폐기한 한 개만 교환을 해주겠다”고 응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인스타그램에는 임블리 소비자 계정이 만들어졌고, 임블리 제품의 문제점과 임 상무의 무책임한 대처 등이 제기되며 대중의 공분을 샀다.

온라인뉴스팀 sportskyunghy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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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부터 2009년까지 10년마다 경향신문의 같은 날 보도를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매일 업데이트합니다.


■1999년 10월29일 고문기술자 이근안 12년 도피 끝 자수

‘고문’하면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르십니까? ‘일제’, ‘독립투사’, ‘독재 정권’, ‘민주화 운동’, ‘남산’ 등 다양한 단어들이 생각나실 겁니다. 그렇다면, ‘고문’하면 떠오르는 사람도 있으신가요? 아마 다양한 사람들이 언급되겠지만 빠지지 않고 등장할 사람이 바로 ‘고문 기술자’라 불린 이근안씨가 아닐까 합니다. 이씨가 놀라운 것은 ‘고문 기술’ 때문만이 아닙니다. 그는 12년간 검·경의 수사망을 뚫고 도피생활을 했는데요. 계속 잡히지 않을 것 같던 그가 20년 전, 돌연 자수를 합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요?


이근안씨의 자수는 20년 전 오늘, 거의 모든 신문 1면을 장식했습니다. 경향신문 역시 이 소식을 전했는데요. 기사의 제목은 “고문 기술자 이근안 자수”입니다. “12년째 검·경의 수배를 피해 도피해온 ‘고문기술자’ 이근안 전 경기경찰청 공안분실장이 28일 검찰에 자수했다”로 시작하는 기사는 “이로써 군사독재 정권 시절 학생·재야인사 등 민주화운동가들에게 자행된 고문의 실태·진상이 낱낱이 밝혀지게 됐으며 이씨가 그동안 어디서 누구의 도움을 받으며 도피생활을 할 수 있었는지 등에 대한 의문도 풀릴 전망이다”고 전합니다.

그렇다면 이날 이씨의 자수는 어떻게 이뤄졌을까요? 기사에 따르면 이씨는 충북의 장기은신처에 있다가 오후 8시30분쯤 수원지검 성남지청 당직실로 향했다고 합니다. 거기서 “내가 이근안이다. 당직 검사를 만나고 싶다”며 자수를 요청했다고 하네요. 왜 자수했을까요? 당시 이씨는 성남지청에 자술서를 남겼는데요. “최근 재판을 받은 대공 경찰 동료들의 형량이 가벼운 데다 오랜 도피생활에 지쳐 심경의 변화를 느꼈다”고 자수동기를 설명했습니다. 무거운 처벌을 받지 않을 것이라 판단한 것이 자수의 동기인 셈입니다.

놀라운 것은 이씨가 “주소지인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 근처를 비롯, 충북 친지 집 등에서 은신해 왔으며 외국에 나간 적은 없다”고 밝힌 대목입니다. 국내에 있었는데 12년을 잡지 못한 것은 다양한 생각이 들게 하는 대목인데요. 검찰은 서울지검 강력부, 경찰은 경기경찰청 전담수사반 50명을 투입해 이씨의 소재를 추적하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날 경향신문의 또 다른 기사에서는 이씨의 12년 도피 생활 때문에 나왔던 여러 추측들도 소개됐습니다. 이른바 ‘밀항설’, ‘변장설’, ‘사망 또는 자살설’, ‘성형수술설’ 등이 그것인데요. 이씨를 만났던 경찰 동기생이 “평소 몸무게 100kg이 넘던 이씨가 70kg 안팎으로 빠져 몰라보게 달라져 있었다”며 “변신술에 능한 그를 식별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씨로부터 고문을 당했던 피해자들은 어떤 심경이었을까요? 대표적으로 이씨의 고문에 희생됐다고 알려진 고 김근태 의원은 “그는 독재 정권의 하수인이자 가해자였던 동시에 어두운 시대의 희생양이었다”며 “다가올 어려움을 잘 극복할 수 있기를 바란다”며 이씨를 용서했다고 합니다. 기사에는 “재야 출신인 국민회의 김근태 부총재는 민청련의장 시절인 1986년 서울대 민추위와 전학련 삼민투 사건의 배후자로 지목돼 검거된 뒤 이근안에게 물고문, 전기고문 등 온갖 고문을 당한 대표적인 고문피해자였다”고 전합니다.


또 김 의원은 “이씨 개인을 위해서라도 자수를 하고 과거를 정리하는 것이 다행스러운 일”이라며 “국민들에게도 어두운 시대의 유물을 청산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밝혔습니다. 용서라는 것이 어디까지 가능한 것인지 놀랍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용서를 받은 이씨가 “최근 재판받은 동료들의 형량이 비교적 가벼웠고, 오랜 도피생활에 지쳤다. 재판을 보고 마음이 안정됐고 심경의 변화를 느꼈다”고 진술한 부분은 용서에 대해 또 다른 생각도 들게 합니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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